스페이사이드가 스카치위스키의 성지라면, 아일레이(Islay)는 싱글몰트 위스키의 성지, 혹은 위스키 성지 중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아일레이에 거주하는 3천 명가량의 인구 대부분이 위스키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그렇게 불려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저서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에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위스키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거치게 되는 것이 싱글몰트 위스키라면, 싱글몰트에 관심을 가지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아일레이에서 태어나는 피트 위스키이다. 피트 위스키로 유명한 아일레이 섬의 증류소로는 아드벡, 라가불린, 라프로익, 보모어, 쿨일라, 부나하벤을 비롯해 한때 문을 닫았다가 다시 개장한 브룩라디가 있다. 또한 2005년 아일레이섬에 124년 만에 새로 설립한 커호만과, 가장 최근인 2018년에 설립한 아드나호까지 총 9곳의 증류소가 있으며, 1825년에 설립되었던 포트앨런 증류소가 재개장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은 피트향이 낯선 초보자들을 위해 입문하기에 적합한 피트 향이 약한 것부터 강한 순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1. 보모어(Bowmore)
아일러 섬의 지명인 "거대한 암초"라는 뜻을 가진 보모어 증류소는 1779년 증류를 시작하여 1816년 존 심슨이 증류 허가를 받았다. 1837년에 윌리엄과 제임스 머터 형제를, 1963년에 스탠리 모리슨을 거쳐 1994년에는 산토리에 매각되었고, 현재까지 라가불린과 함께 산토리의 소유이다. 직접 플로어 몰팅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는 40% 정도로 라프로익이 20%인 것에 비해 높다. 주력 제품은 12년 위스키로 강하지 않은 피트 풍미, 꿀과 과일향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아일레이 역사 상 가장 복잡하고 미스테리한 위스키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일레이 위스키의 분수령'이라고 표현했다. 아일레이 위스키가 가지는 수많은 특징을 모두 가지면서, 동시에 탁월한 밸런스로 그 특징들이 유지되는 절묘라는 표현에 걸맞은 위스키이다.
2. 쿠일라(Caol ila)
게일어로 "아일러의 해협"이라는 뜻을 지닌 쿠일라 증류소는 1846년에 헥터 헨더슨이 설립했다. 1857년에 벌록 레이드에게 판매된 후 1927년 DCL에 매각되어 디아지오 소유가 되었다. 쿠일라는 아일레이 섬에서 가장 많은 양의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으며 디아지오의 블렌디드 위스키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비교적 가벼운 피트와 짭짤한 훈연 풍미의 쿨일라 12년은 2002년에 출시되었다. 조니워커 그린에서 느낄 수 있는 피트-요오드 향이 바로 탈리스커와 이 쿠일라다. '최고의 위스키'에서 목초액을 마시는 듯한 맛 까지 맛에 대한 평가가 천지차이로 갈리는 위스키이다.
3. 라가불린
"방앗간의 분지"라는 뜻을 지닌 라가불린 증류소는 존 존스톤이 1816년에 설립했다. 1908년에 두 번째 증류소인 몰트밀 증류소가 설립되었으나 1962년에 문을 닫았다. DCL을 거쳐 지금은 디아지오의 소유이다. 대표 제품은 라가불린 16년으로 1988년에 출시한 디아지오 클래식 몰트 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포트엘런의 몰트를 사용하며 풍부하고 강렬한 짠맛과 요오드 약품, 스모크 바다향, 피트향이 강렬한 아이라의 느낌을 보여주나, 아드벡과 라프로익과는 다르게 풍부한 과일향과 꽃향기를 느낄 수 있다. 가격대는 비교적 높게 형성되어있는 편이고 국내에서 구하기가 쉽지는 않다.
4. 라프로익
"드넓은 만의 아름다운 습지"라는 뜻을 지닌 라프로익 증류소는 1815년 농부인 도널드와 알렉산더 존스턴 형제가 설립했다. 1954년까지 존스턴 가문의 소유였다가 지금은 산토리의 소유다. 미국에 금주법이 발효되던 시절, '메디컬 스피릿'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찰스 왕세자가 좋아하는 위스키로도 유명하며 1994년 영국 왕실의 품질 보증서인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수여 받았다. 대표 제품은 10년 숙성 위스키로 피트와 스모크 풍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제품이다.
피트가 내는 강한 훈연 향과 쉴 새 없이 드나든다는 거친 바닷바람이 숙성시킨 피니쉬는 아일라 지역 위스키만의 독특한 개성인데, 라프로익은 그중에서도 강하고 거친 축에 속한다. 특유의 훈연과 바다 향이 치고 들어오는데, 퍼진다기보다는 터진다는 느낌에 가깝기 때문이다. 숯, 연기, 타르, 리크리시가 스모크와 바다향을 통해 젖은 흙과 나무를 연상시키는 복잡한 노트들이 한꺼번에 치고 올라온다. 그 뒤에 곧장 토피, 바닐라, 초콜릿, 체스트 넛 같은 옅은 달콤함과 고소함이 섞인 노트가 따라온다. 맛이 풍부하고 기름진데 긴 여운을 남기지 않고 끝나버린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데 광고 문구도 이를 반영하듯, 'Laphroaig—love it or hate it, there's no in between'이다.
5. 아드벡
게일어로 "작은 곶"을 의미하는 아드벡은 1815년 맥두걸 가문이 설립했다. 한때 아일레이에서 가장 컸던 아드벡 증류소는 1977년 하이람 워커에 인수된 이후 몇 번의 개폐장을 반복하다가 1997년에 글렌모렌지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LVMH(루이비통 모엣헤네시) 소유이다. 강한 피트 풍미로 유명한 아드벡의 대표 제품은 10년 제품으로 향료, 초콜릿 풍미와 강한 피트, 스모크 풍미가 조화로운 위스키이다. 현존하는 위스키 중 가장 컬트적이고 독특한 위스키로, 피트 함유량이 매우 높아 위스키 마니아들의 최종 종착지라고 까지 표현되는 독특하고 강렬한 위스키이다. 가벼운 바디감으로 인해 특유의 요오드-크레졸 향도 더 진하게 느껴지는데, 이러한 향으로 인해 초보자들이 즐기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의외로 맛이 달콤한 맛이 나기 때문에 아일레이 위스키의 매력을 강하게 느껴보고 싶다면 도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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